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/평가/부정적 평가/정치 (문단 편집) ==== 사유재산 강탈 ==== >3공 때부터 피해를 제일 많이 본 것이 삼성 >삼성그룹 이건희 회장[[https://m.yonhapnewstv.co.kr/news/MYH20201025012800038|#]] 박정희는 '''강제로 정부에 헌납된 재산을 사유화'''했다. 명목상 "부패한 기업인으로부터 헌납받은 것"이라고는 하지만, 헌납은 엄연히 정부에 했는데 이 재산들을 박정희와 관계 있는 재단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. 대표적으로 [[정수장학회]]와 [[영남대학교]]가 있다. 그리고 이것들은 박정희 사후 [[최태민]], [[최순실]], [[정윤회]] 등의 수중에 넘어갔다. [[https://www.kbmaeil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398425|#]] [[https://pub.chosun.com/client/article/viw.asp?cate=C01&nNewsNumb=20170122684|#2]] [[김지태]]는 자신이 설립한 [[부산문화방송]]과 [[부산일보]] 등의 지분을 장학사업을 위해 부일장학회에 출자한 상태였는데 부정축재법 위반 등 혐의로 [[중앙정보부]]에 구속되면서 정부에 부산일보, 한국문화방송, 부산문화방송 등 부일장학회를 넘기게 된다. 강제로 재산을 헌납받은 것도 문제이지만, 헌납된 재산의 대부분은 국고에 이전되지 않고 [[5.16 장학회]]로 불법적으로 이전되었다. 5.16 장학회는 김진태가 재산을 불법적으로 헌납한 뒤 닷새 뒤에 설립되었으며, 이후 [[박정희]]와 [[육영수]]의 이름을 한 글자 씩 딴 '정수장학회'로 개명되었다. 또한 박정희 정권은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지식인들을 정리할 목적으로 대학정비사업을 추진하였다. 여기에 휘말린 대구대학[* 현재의 [[대구대학교]]와는 별개의 대학]의 운영자였고 마지막 [[경주 최씨|최부자]]로 알려진 [[독립운동가]] 최준은 [[삼성그룹]] [[이맹희]] 회장에게 대학을 넘겼고, 삼성 [[사카린 밀수 사건]] 때 삼성은 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겼는데, 이 또한 국고로 귀속되지 않고 다른 헌납대학인 청구대[* 이 청구대에 소속되있던 학교가 [[경일대학교]]]와 합쳐 [[영남대]]가 되었다. 이맹희 회장의 회고록 222페이지에서 "70년대 초반, 삼성은 [[대구시]]의 대구대학을 소유하고 있었다. 그런데 [[이후락]] 씨가 어느 날 '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기라'고 요구를 해왔다."고 적혀 있어서 삼성은 정부헌납을 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. 그러나 이들 대학은 국공립화도 아닌 사유화가 되었다. 박정희는 제3차 5개년 개발계획의 하나로 산지개발을 지시, 설악관광주식회사의 대표 겸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[[한병기]]는 "1970년 1월 13일 [[설악산]] [[케이블카]] 사업이 완공된다"고 밝혔다. 이후 이 사업은 상당한 의혹을 받고 있는데, [[설악산]]이라는 국립공원에 단독으로 케이블카를 대통령으로부터 아무런 제약 없이 허락받았기 때문이다. 이후 한병기가 박정희의 장녀인 [[박재옥]]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더 큰 파장을 일으켰고, 한병기 일가의 '[[상속|사업 대물림]]' 때문에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. 2015년 기준 45년간 설악산 케이블카를 독점하여, 자녀들에게 [[대물림]]되고 있다는 사실이다.[* 아들 한태준, 한태현은 '설악케이블카(주)'의 대주주이다.][[http://www.vop.co.kr/A00000556872.html|#]]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[[한국민속촌]]도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. 민속촌 설립자 김정웅의 진정서를 바탕으로, 2012년도 야권은 "해당 사업은 박정희 집권 당시 강탈된 재산"이라고 주장했다. (주)기흥관광개발을 설립한 김정웅은 민속촌 완공 이듬해인 1975년경 [[문화재보호법]] 위반혐의로 구속됐고, 이에 후속 공사가 중단되면서 자재 대금으로 발행한 수표가 [[부도]]나 버렸다. 경영위기에 허우적거리던 찰나, 박정희의 처조카사위[* [[육영수]] 여사의 큰언니 육인수의 사위, [[박근혜]] 제19대 대통령의 이종사촌 형부]로 소개한 정영삼이 동업을 제안했다. 1976년 지분 50%를 1억원에 넘기는 것을 허했으나 이후 정염삼의 태도는 돌변, '나머지 주식을 양도하라'고 재구속을 운운하며 협박했다는게 김정웅의 주장이다. 결국 나머지 지분 50%를 1억 원에 넘겼고 소유권, 운영권은 정영삼이 차지했다. 현재 민속촌의 소유는 (주)조원관광진흥이 갖고 있고 이 지분은 정영삼 일가가 나눠가졌다. 이 회사 자산만 858억 원이며, 정씨 일가가 소유한 타 7개의 기업의 자산은 2011년 기준 4,529억 원에 달한다.[[http://www.hani.co.kr/arti/society/society_general/564970.html|#]] 또 하나는 [[홍익대학교]] 재단이다. 이 재단의 소유자는 [[독립운동가]] 출신 이흥수 홍익대 초대 이사장로부터 사들인 [[이도영(1913)|이도영]] 일가다. 재단 퇴진운동으로 인해 1961년 이사장 자리에 물러나있던 이도영은 1963년에 다시 복직하는데, 이때 박정희 일가와의 인척관계가 도와주지 않았나라는 의혹이 존재한다. [[최민희]] 의원실에 의하면, 이도영의 차남 이석훈 재단 전 이사는 육영수 여사의 오빠인 [[육인수]]의 딸 육해화와 결혼했다. 육인수 또한 재단 이사를 지냈다고 한다. 이들 또한 홍익대 재단 이사장직을 내리물림하고 있다.[[http://www.pressian.com/news/article.html?no=39900|#]]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, 박정희 정권 당시에 사업을 벌였고 인척관계가 있다는 것이다. 창업자들이 사업을 누구에게 이전할지는 본인의 마음이지만, 당시 대통령과의 관계를 내세워 이익을 취한 사업자들에겐 재산을 반환받아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. [[탐관오리|또한 이렇게 갈취된 사유재산이 국가 발전이 아닌 대통령 개인과 특정 정당의 이익에 쓰였다는 것도 추가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